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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낯선 곳으로 내던져진 <여행자>, 그 보편적 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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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에 대한 사전 정보는 별로 없었습니다. 이것저것 알고 보면, 정작 영화를 볼 때 재미가 줄어들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비평이나 평점, 혹은 뒷이야기들을 멀리하게 되거든요. 하지만 한국 입양아 출신의 프랑스인이 만들었다는 것 정도는 너무 알려져있었지요. 이창동이 제작했다는 것도 어느 정도 이 영화의 성격을 미리 짐작해볼 수 있는 약간은 뻔한(?) 단서였습니다.

이 영화는 의외로 '고아원'이라는 장소를 무대로 하는 이야기의 전형적인 설정에서 출발합니다. 하지만 전형성의 함정으로 빠지지는 않습니다. 주인공을 괴롭히는 숙희, 어느 정도 위악적인 보모 선생, 진희를 속이는 원장 선생, 모두 주인공 진희와 적대적인 위치에 서있지 않고요, 이에 비해 약간은 따뜻하고 선한 인상의 수녀들은 오히려 진희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합니다. 인물의 구도에서 갈등, 어떤 감정의 고양을 일으킬만한 계기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영화의 어조는 저채도의 색조만큼 건조하고 담담합니다.

저의 감정선을 건드린 것은 엔딩씬 직전입니다.

어둠을 배경으로 새근새근 숨소리가 깔리고, 진희는 아빠의 넓은 등을 꼭 껴안고 있습니다. 흔들흔들 자전거가 어두운 배경으로 멀어지면서 숨소리는 서서히 옅어져갑니다. 진희가 아빠의 넓은 등을 꼭 붙들고 있었을 때 광막한 세상에는 정말 아빠와 나 단 둘밖에 없었을 거예요.

삐그덕 거리는 낡은 자전거는 이 두 사람을 태운채 느릿느릿 어둠이라는 세상을 항해하는 외로운 배처럼 보입니다. 뒤이어 진희가 달랑 이름표만을 목에 건 채로 지구 반대편의 한 공항 출국장에 홀로 내던져지는 엔딩 씬에서 이 자전거 씬은 오래도록 잔상으로 남아 오버랩 됩니다.

꼼꼼하게 재현되고 또 잘 구성된 우니 르콩트 감독의 어린 시절은 한국 입양아 출신 프랑스인의 버림받은 한 시절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보편적인 울림을 만들어냅니다. 그것은 이 영화가 사람과 사람, 그리고 함께 존재하던 것이 사라진 낯선 세상이라는 보편적인 외로움을 다루었기 때문일 겁니다.

사람이 삶을 산다는 건 그렇게 얼마간은 쓸쓸하고 안쓰럽고 또 때론 대견한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익숙한 곳에서 낯선 곳으로 짐을 꾸리는 여행자처럼 말입니다.

너도 견디고 있구나//
어차피 우리도 이 세상에 세들어 살고 있으므로/
고통은 말하자면 월세 같은 것인데...
-황지우 <겨울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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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16 08:00 2009/11/1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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