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오밥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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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내 옛 애인에게 들려주었던 시
삼년전쯤이었을까요.
어느날인가 그 녀석이 자지 않고 말을 계속 빙빙 돌렸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냥 잠들고 싶지 않아 한다고 할까요.
뭔가 싶다가, 아, '그 말이 듣고 싶은 거구나...'
그런데 저는 좀 낯간지러운 걸 싫어해요. 감정 표현이 많지 않지요.
가끔 안치환의 '내가 만일' 같은 노래를 불러주면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 그 녀석은 '너는.. 로맨티스트구나' 하면서 씨익 웃어주곤 했죠.
아마 그날은 노래를 불러주지 않고, 하드디스크에 깊이 저장해둔 이 시만 보내주었을 겁니다.

"이 시는 내가 결혼하고 싶은 사람에게 읽어주고 싶었던 시다."
"...오~"
그 녀석은 한참을 말을 잇지 못해하던 것 같습니다.
그날은 별말 없이 잠이 들었고,
그 뒤로 일년 정도를 잘 만나다가 어느날 정말 거짓말처럼 우리는 남남이 되었습니다.
나트륨등이 노랗게 빛나던 늦은밤에 서교동 좁은 골목길을 서로 손을 잡고 거닐던 그때가
지금도 가끔 그때 생각이 납니다.



늙어가는 아내에게

황지우

내가 말했잖아
정말, 정말, 사랑하는,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은,
너, 나 사랑해?
묻질 않어
그냥, 그래,
그냥 살어
그냥 서로를 사는 게야
말하지 않고, 확인하려 하지 않고,
그냥 그대 눈에 낀 눈곱을 훔치거나
그대 옷깃의 솔밥이 뜯어주고 싶게 유난히 커 보이는 게야
생각나?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늦가을,
낡은 목조 적산 가옥이 많던 동네의 어둑어둑한 기슭,
높은 축대가 있었고, 흐린 가로등이 있었고
그 너머 잎 내리는 잡목숲이 있었고
그대의 집, 대문 앞에선
이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바람이 불었고
머리카락보다 더 가벼운 젊음을 만나고 들어가는 그대는
내 어깨 위의 비듬을 털어주었지
그런 거야, 서로를 오래오래 그냥, 보게 하는 거
그리고 내가 많이 아프던 날
그대가 와서 참으로 하기 힘든, 그러나 속에서는
몇 날 밤을 잠 못 자고 단련시켰던 뜨거운 말;
저도 형과 같이 그 병에 걸리고 싶어요

그대의 그 말은 에탐부톨과 스트렙토마이신을 한 알 한 알
들어내고 적갈색의 빈 병을 환하게 했었지
아, 그곳은 비어 있는 만큼 그대 마음이었지
너무나 벅차 그 말을 사용할 수조차 없게 하는 그 사랑은
아픔을 낫게 하기보다는, 정신없이,
아픔을 함께 앓고 싶어하는 것임을
한밤, 약병을 쥐고 울어버린 나는 알았지
그래서, 그래서, 내가 살아나야 할 이유가 된 그대는 차츰
내가 살아갈 미래와 교대되었고

이제는 세월이라고 불러도 될 기간을 우리는 함께 통과했다
살았다는 말이 온갖 경력의 주름을 늘리는 일이듯
세월은 넥타이를 여며주는 그대 손끝에 역력하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아침 머리맡에 떨어진 그대 머리카락을
침 묻힌 손으로 집어내는 일이 아니라
그대와 더불어, 최선을 다해 늙는 일이리라
우리가 그렇게 잘 늙은 다음
힘없는 소리로, 임자, 우리 괜찮았지?
라고 말할 수 있을 때, 그때나 가서
그대를 사랑한다는 말은 그때나 가서
할 수 있는 말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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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21 21:55 2009/03/21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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