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오밥나무

첨바왐바: Article search results

  1. 신해철

신해철

신해철이 얼마 전 학원광고에 출연한 것에 대해 해명하는(?) 글을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렸다. 여기저기서 또 갑론을박인 모양이다.

알려져있다시피, 그는 얼마 전 입시학원 광고를 찍었다. 그리고 이내 포화와 같은 공격이 그에게 쏟아졌다. ‘평소 사교육을 비판해왔으면서 사교육의 첨병인 학원 광고를 찍는 게 말이 되냐’는 것이 그 요지다. 신해철을 추앙하던 이들의 입에서는 실망했다는 탄식이 튀어나오고 있고, 신해철을 못마땅해하던 이들은 물을 만난 듯 비난에 신이 났다. 미디어를 통해 제도권에 대해 거침없는 비판과 독설을 퍼붓던 논객 신해철은  하루 아침에 저열한 배신자로 낙인찍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런데, 나는 누리꾼들의 불붙는 분노에 조금 관망적이 되었다. 광고 하나 찍었다고 해서 사람을 하루 아침에 180도로 정반대의 모습으로 본다는 게 가당한가?

신해철이 지금까지 사교육을 비판해왔다는 것이 이번 분노의 첫 근거다. 그런데, 사실 신해철이 학원 공부 하지 말라고 한 적은 없다. 사교육을 조장하는 교육 체계와, 학생들을 경쟁으로 내모는 교육 정책을 비판은 했겠지만. 상식적으로 시장경제에서 학원이라는 것은 절대 없어질 수가 없는 것이거니와, 제아무리 선진국이라해도 사교육이 없는 나라는 없다. 심지어 집에서 엄마가 아이에게 가르치는 구구단도 사교육이다. 신해철이 사교육을 비판했다는 건 그냥 우리가 만들어낸 ‘환타지’일 뿐이다. 신해철이라는 사회적 아이콘에 대한 환타지.

사실 신해철이 예나 지금이나 딱히 변한 것은 없어보인다. 그는 그냥 평소 자처하던대로 ‘딴따라’일 뿐이다. 다만 그는 진보도 아니고 정치 논객은 더더욱 아니었지만, 자리가 마련되면 그는 거절 않고 그 자리를 도맡아왔다. 그런 행동에 뭐 어떤 거창한 역사적인 사명이나 신념, 사회 의식 따위가 있을 리 없다. 그런 그에게 대중은 사회적인 의식으로 무장한 논객의 이미지를 만들어 씌웠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하루 아침에 그 우상을 하늘 꼭대기에서 지하로 끌어내린 것도 대중이다.

엘 고어는 지구 온난화의 위험성을 부르짖으며 환경 다큐멘터리로 주가를 올리고 있을 즈음, 그는 고액의 전기고지서가 공개되어 세인들의 웃음거리가 된 적이 있다. 기업윤리나 인권 등 좌파적인 정치 발언으로 주목받던 조지 클루니는 제3세계를 악질적으로 착취했던 네슬레의 광고 모델이 되어서 역시 논란이 되기도 했다.[fn][조지 클루니] 신념 있는 섹시스타의 정치적 행보를 돌아보다 ②, 씨네21, 2007.12.4. (630호) http://www.cine21.com/Article/article_view.php?mm=005001001&article_id=49287[/fn]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폐기되지 않는 건, 그들은 사회적으로 여전히 유효한 아이콘이기 때문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런 사회적 논란거리를 의도적으로 역이용한 경우도 있다. 영국의 첨바왐바(Chumbawamba)라는 밴드는 집권당인 노동당의 귀족적 행태를 비판하기도 하고, 화끈한 정치적 발언도 떠뜨리면서 인기를 모은 자유주의 좌파(?) 성향의 밴드다. 언젠가 그들은 EMI와 손잡고 음반을 냈는데, EMI는 한때 그들이 무기를 제조한다고 욕하던 기업이었다. 팬들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은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이들은 후에 GM과의 음원계약으로 받은 돈을 안티GM운동에 기부했다. GM은 웃음거리가 됐다.[fn] 신해철 '광고출연' 변절'?, 천만에 한국의 'Chumbawamba', 노컷뉴스, 2009.2.11. http://www.cbs.co.kr/Nocut/Show.asp?IDX=1062516[/fn]

엘 고어든, 조지 클루니든, 첨바왐바든, 신해철이든, 나는 그들이 도덕적으로 깨끗한지 않은지는 사실 그닥 관심없다. 정치권을 둘러보면 이들보다 훨씬 부패한 사람들이 많은데 뭐 이까짓 자본주의 사회에서 광고 하나 찍은 걸로 도덕성 운운하는 건 좀 우스꽝스럽지 않은가.

이 이벤트 자체가 주는 관망점이랄까 뭐 그런 게 너무 묻혔다. 반응들은 지나치게 진지하고, 너무 어둡고, 칙칙하다. 조금 더 가볍게 보고 즐길 수는 없는 걸까? 이 상황을 즐기는 듯한 신해철과 격하게 반발하는 온라인의 반응들이 묘하게 대비가 되어보였다.

한국 진보의 아킬레스 건, 진보의 치명적 약점은 항상 그 ‘상상력의 결여’였다. 최소한 예측할 수 있는 길로만 가는 ‘직업적인 운동가’보다는 신해철이 던져줄 수 있는 화두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처음부터 비교적 즐겁게 관망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 신해철이 손가락욕 사진을 올렸다. 좀 궁색해보이는 건 사실이다.

<궁시렁> 글갈래의 다른 글
2009/03/01 05:18 2009/03/01 05:18

1

Recent Trackbacks

  1. 기술의 비밀 하늘로 솟은 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