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오밥나무

전화

빨래를 개고 있는데, 누나에게서 문자가 왔다. 빨간 문자다. 긴급. 아버지가 입원하셨다고. 발이 좋지 못해서 입원하신 모양이다.

아버지는 당뇨가 있으시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약을 한웅큼씩 드시곤 했다. 과일이나 보약 같은 걸 하도 챙겨드셔서 운동도 안하고 무슨 몸을 저리 챙기나 눈을 흘기기도 했는데, 나중에 커서 느끼건대, 그건 약 독성을 중화시켜보력고 애쓴 어머니의 노력이었던 듯했다.

이번에 집에 내려갔을 때 아버지의 다리는 앙상하게 야위어 있었다. 당뇨 합병증에 동맥경화가 겹쳐 발이 좋지 못하다고 하셨다. 최악의 경우는 발이 괴사하는 것이다. 최악의 경우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식은 땀이 흘렀다.

조용하고 공상이 많았던 어린 시절의 나는, 부모님이 계신 안방에서 놀다가 아홉시가 되면 내 방으로 가서 자곤 했다. 불을 끄고 누워 '이 행복이 얼마나 갈까, 아버지 어머니가 내일 당장 덜컥 돌아가시면 이 세계는 어찌 되는 걸까'를 생각하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걷잡을 수 없는 슬픔과 불안이 밀려들어오는 것이었다.

5남 1녀중 마지막 남은 작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버지와 고모만이 남았다. 작은 아버지의 빈소에서 손님을 받으며 나는 급격한 세대교체를 느꼈었다. 그곳에서 형제중 홀로 남은 아버지는 아주 작아져있다. 그리고 나는 비로소 어른이 되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세대를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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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05 13:30 2007/08/05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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